2007년 늦가을 <아고라에서 광화문까지>를 내면서 아쉬운 게 남아 있다. 그 책에 서문이 없고, 또한 작성되었던 원고 하나가 출간 협의 단계에서 빠진 것이다. 이에 그 빠진 원고 하나를 블로그에 공개하기엔 길지만 여기에 공개하고자 한다... 원고의 제목은 '이름 있는 몇몇이 모여서' 이었고, 2부에 중간쯤에 배치되었었다.

<삼성은 대단하다. 삼성은 2005년 기준으로 이 나라 수출의 22%를 담당하며, 상장사 매출 및 이익의 각각 15% 및 25%를 차지한다.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법인세 비중이 4.13%에 달하고,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16.5%, 수출의 17.5%, 상장사 연구개발비의 40.1%(2004)를 점한다. 이를 자본시장이 그냥 놓칠 리 없다. 2006년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사실 삼성 그룹 상장사 14개 회사였다. 삼성 그룹에만 투자하는 펀드들은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이를 젊은이들이 놓칠 리 없다. 삼성은 당연히 취직 1순위다. 대학 도서관은 이른바 삼성고시 준비생으로 넘쳐난다.


삼성은 정말 대단하다. 삼성 아파트를 삼성 계열의 경비업체가 지키게 해놓고, 삼성 냉장고부터 필요한 것들을 삼성카드로 사서 아파트를 채우고, 삼성 컴퓨터로 삼성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고 삼성 배달업체가 가져다 준 것을 먹다가 아프면 삼성병원에 가면 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냉장고 브랜드와 증권회사 브랜드가 일치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사연이 있어서 자동차만 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삼성자동차라고 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니 그것도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리고 삼성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게끔 사람을 휘어잡는 광고 분야에서도 삼성은 물론 1등이다. 물건도 좋고 광고 기술도 좋으니, 삼성은 그야말로 자족적이다. 면세점을 가 보아도 신라 면세점은 확실히 다르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


이런 삼성을 외국에서 대하기라도 하면 정말로 반갑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한국 기업 간판은 해외에서 엄청 친근하게 느껴진다. Samsung을 ‘샘성’ 정도로, Hyundai를 ‘현다이’ 정도로 어렵사리 읽어 내고는 좀 안다고 한국 이야기를 시작해보려는 외국인들을 보면 귀여운 생각도 든다. 대다수 외국인들은 그 간판으로 한국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한국을 알리는 매체는 재외 공관이나 관광공사가 아니라 대기업들 간판이다. 그 간판들은 그래서 자랑스럽다.


그 자랑스러웠던 삼성 간판도 국내에서 대하면 왜 그리 무덤덤하거나 차갑게 느껴지는지, 그 급반전에 어느 땐 실제로 당혹스럽다. 삼성이 국가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삼성은 사실 좀 멀리 있다. 삼성은 개발독재시대에 국가 및 국민에게 진 부채를 일자리 제공으로 열심히 갚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삼성은 그것도 말 그대로 좋은 일자리를 이 사회에 제공하려 애쓴다. 또한 삼성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도모하려 납품업체에 현금으로 결제한다. 코스닥 벤처 기업 사장의 10% 정도는 삼성 출신이어서, 이 삼성 출신 사장들의 벤처 기업들이 일자리를 또 얼마큼 제공할 지를 생각해보면 국민경제에 대한 삼성의 기여는 대략 짐작이 된다.


이런 삼성이 자신의 기업 활동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나아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삼성에 대한 비판은 지속된다.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삼성은 화도 나고 억울하겠지만, 삼성은 이를 참으며 애도 써본다. 삼성은 요사이 온통 사회봉사 중이다. 양로원, 고아원 등 어디든 낮은 데로 삼성은 임하고 있다. 또한 그룹 회장은 사재 8천여억원을 출연해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2006년 10월 출범시키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비판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물론 언론이나 방송, 일상생활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비판의 동력이 조금이라도 줄고 있다는 징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사회로부터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들도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언제 보니까 정말 모르겠다는 기사도 났었다. 나아가 삼성 비판의 근본에 혹시 질투와 시기가 있지 않나하고 그들은 의심도 해보는 눈치다.


비판 앞에서 삼성은 사회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주장도 하곤 한다. 삼성도 그럴 권리가 있으며, 또한 적극적으로는 삼성은 기업 환경을 자신에게 우호적이게끔 노력도 해야 한다. 이의 일환으로 삼성은 법조계와 언론계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돈을 지배한 삼성은 변호사, 검사, 판사, 고급공무원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삼성 관련 재판에서는 삼성 커넥션이라는 말이 그치지 않고 나온다. 이도 삼성의 자기주장의 한 방법일 것이다. 삼성의 이런 노력은 법 관련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얼마 전부터는 언론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사회 여론이 기업 친화적이게끔 노력하겠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삼성은 열심히 일하여 일자리도 제공하고 엄청난 기여도 하는데 비판을 받는다. 삼성은 이에 한 편으로는 사회봉사에 나서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자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똑똑한 이들’을 내세운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삼성에 오너가 있어서 문제도 아니며, 그가 오너여서 문제는 더 더욱 아니며, 문제는 바로 삼성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가 현재까지 보여주는 역사진행방향, 시대정신과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비판을 받으면 반응한다. 그 반응은 대개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된다. 삼성에는 그룹 전체의 질서를 잡고 일의 방향을 최종 판단하는 몇몇이 중요하다. 이름 있는 몇몇이 삼성을 이끈다. 삼성의 오늘은 ‘이름 있는 몇몇이 모여서’ 회사를 잘 운영한 덕분에 있다. 이렇게 움직이는 회사라는 하나의 사회는, 사회의 목적 및 정의가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에게 물어지는 현대의 정치 공동체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 한다.


노예는 주인 안에서 산다. 주인을 선택할 권리는 그에게 없다. 회사원은 회사 안에서 일한다. 일단 입사하면 회사를 선택할 권리는 그 회사원에게는 더는 없다. 반면에 현대 사회의 시민은 누구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산다. 그리고 그 사회의 나아갈 길과 정의로운 길을 시민들 하나하나가 선택하고 결정한다. 삼성에는 지혜로운 몇몇이 정하는 목적의 실천이 주요 관심사이지, 목적 자체의 정당성과 시의성에 대한 질문이 하나하나에게 제기될 필요는 없는 조직이다. 회사와 정치 공동체는 다르다. 회사는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지만 우리는 공동체에서 퇴직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지 회사 다니는 동물이 아니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 물품인 반도체, 휴대폰도 잘 만들고 뭐든 잘한다. 그런데 현대 산업사회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에는 자세를 거꾸로 취하는 게 삼성이다. 휴대폰이 현대사회의 빛나는 물건인 이유는 이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술에만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현대사회의 성격에도 있다. 각 개인은 단말기를 들고 세상에로의 접근 및 대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휴대폰은 노예나 농노에게는 사실 필요 없다. 어느 누가 나를 대신하여 이야기해주는 세상과 휴대폰은 거리가 멀다. 이름 있는 몇몇이 이름 없는 하나하나를 이끄는 세계와 휴대폰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설령 이름 있고 지혜로운 이라도 말이다. 휴대폰을 잘 만들어 이 세상에 팔아먹는 삼성은 그런데 휴대폰이 개개인에게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말하자면 일류나 천재가 밥을 먹여주고 대신 판단해주는 그런 세상을 여전히 고수하고자 한다. 물질과 물건은 현대적인데, 이것들의 사용 시간과 공간 및 쓰임새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휴대폰은 경비원들의 워키토키가 아니다.


삼성을 둘러싼 비극이 있다면 여기에 있다. 삼성은 21세기 지금에 필요한 물건은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 팔고 있지만 21세기 지금의 세상이 넓게 보면 신앙의 중세, 정신이나 의식에 서 있던 근대를 지나 도래하였는데 이 세상의 특성이 어떤지 별로 주목하려 들지 않는다. 삼성은 특히 요사이 자신들의 성공 스토리를 사회에 소개하고 성공 방식을 이식하며 나름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 한다. 삼성이 이러면 이럴수록 그렇지만 삼성의 ‘순수한’ 의지는 힘들기만 할 뿐 비판을 부른다. 삼성과 사회가 어긋나는 것이다. 삼성의 힘과 돈이 지금 세상의 성격을 뿌리 채 바꿔놓을 정도로 막강하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힘과 돈을 얻는 데만 실용적으로 도구적으로 몰두해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사회의 지향점이나 목적을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면, 삼성은 자신들의 성공 방식대로 사회를 재편성하여 자신들이 옳다고 보는 방향으로의 사회 발전에도 성공할지 모른다. 일류나 천재는 물질과 물건은 만들어내지만, 그 많은 물건과 물건 중에서 어느 것들을 특히 요구하는 시대를 만들지는 못한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가끔 보기 힘든 장면이 뜬다. 기자들도 말 한 번 붙이기 힘들어 보이는 VIP들은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부터가 다르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몇 초간 그리고 타고 막 떠나려는 차에서 그들은 주로 기자들에 노출될 뿐이다. 그런데 그 화면에 비치는 장면, 그들도 휴대전화를 우리와 같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대권 후보도, 재벌 회장도 그리고 달동네 중학생도 휴대폰을 하나씩 들고 있다. 명품이 없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 오늘날 휴대폰이다. 기껏해야 금줄 달기 정도이니까. 지금 시대는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도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노동자 중산층 시대이다. 어디든 나를 데려다주는 물건인 자동차 그리고 하고 싶은 말 언제 어디서나 말하게 해주는 휴대전화가 바로 우리의 삶의 근본인데, 구매자들이 즉 시민들이 휴대폰을 들고는 천재들의 이야기와 지휘를 받아들이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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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인생예술가 2009/09/21 13:45 Delete Reply

    이야기로만 들었던..
    출판되지 않았던 그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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