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스페인이 궁금했다. 드디어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하지만 그 나라는 여전히 오래 전 과거를 캐먹고 있는 나라로 보이고, 지금은 별로 멋진 나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 이탈리아도 포함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지난 1930년대 전후의 스페인과 유럽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 김원중 역
때는 1920년대. 1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유럽세계에 남아있던 마지막 세 개의 큰 왕조가 몰락한다. 합스부르크 왕조, 독일 황제, 그리고 이보다 먼저 러시아 왕조가 무너진다. 왕조의 몰락은 이전 시대에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졌지만 이때의 왕조 몰락은 좀 황당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지 않고 말 그대로 공화국으로의 이행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시대 조류에서 스페인은 여전히 왕정을 고집한다. 이에는 귀족, 카톨릭, 자본가 및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규군이 가세한다. (49)"당시 정치가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사회가 '과두적 자유주의에서 대중 민주주의로' 이행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알려 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은 공화정을 요구한다. 이러한 갈등 구조에서 1930년대의 몇 차례 선거는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한다.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자신의 갈 길을 간다. 마침내 1936년의 선거에서 공화정 요구파가 승리하고 당시 왕이 망명하자 반대파는 군사 반란을 감행한다. 그리고는 스페인 전역에서 이후 3년 동안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내전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세계의 갈등과 세상의 당시 현재가 그대로 반영된다. 카톨릭과 자본가는 왕정을 지지하는 프랑코 중심의 군대에 가세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는 스탈린 공산주의의 확산을 걱정하며 불간섭을 선포한다. (247)"유화정책이 네빌 체임벌린의 발명품은 아니었다. 유화정책의 뿌리는 볼셰비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926년의 총파업과 경기 침체는 영국 보수 정치가들에게 혁명의 가능성을 매우 현실적인 걱정거리로 만들어놓았다. 그 결과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분쇄한 독일과 이탈리아 체제에 호오(好惡)가 뒤섞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어정쩡한 서방국가, 불간섭을 선포한 서방국가를 뒤로 하고 대표적으로 미국 대기업은 프랑코를 지원한다. (256)"미국은 전쟁 기간 동안 프랑코에게 350만 톤의 석유를 외상으로 수출했는데, 이는 공화 정부가 수입한 석유량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양이었다. 텍사스정유회사(텍사코) 회장은 열렬한 파시즘 찬양자였다." "포드, 스투드베이커, 제너럴모터스가 1만 2천 대의 군용 트럭을 국민군에 제공했는데, 이는 추축국들이 제공한 것의 세 배 가까운 규모였다. 화학공업계의 거인 듀퐁은 4만 발의 폭탄을 국민군에 제공했는데, 중립조약의 규정 위반을 피해 독일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당시 미국 시민들의 70% 가량은 공화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미국 의회의 지원은 미국 내 카톨릭 세력의 집요한 로비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공화파가 기댈 언덕은 그래서 당시 수도 금고에 보관중이던 막대한 금과 스탈린이었다. 금을 주고 여러 곳에서 무기를 사나 무기 체제가 서로 달라 무기의 효율성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446)"서유럽 정부들의 무감각하고 단기적인 반응과, 히틀러와 무솔리니 앞에서 그들이 보여준 무기력한 태도가 파시즘에 대한 저항을 코민테른이 독점하게 만들었다." 스탈린은 공화정부에서 금을 받고는 구형 무기를 섞어 보낸다. 문제는 그 배분이었다. 스탈린은 공화 정부 내의 공산주의자들의 집권을 위해서 무기를 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배분하여 공화파 내의 갈등을 키운다. 실제로 파시스트들과의 전쟁이 한창인 때 공화 지역 내에서 몇 차례 전투 - '내전 중의 내전' - 도 벌어져 자체의 힘을 소진시킨다.
이른바 당시 민주국가들의 어정쩡한 모습, 대기업의 프랑코 지원, 스탈린의 공산주의자 편중 지원이 공화 정부를 어렵게 만들고 있을 때, 실로 전세계에서 국제여단이 결성되어 공화파를 지원하러 참전한다. 이로써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카톨릭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세력에 맞서 싸우는 세력은 말그대로 공화정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셈이다. 파시스트 세력과 이른바 시민 세력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이 싸움의 결과는? 당시 민주 국가들은 빠지고 당시 파시스트 국가들은 한데 뭉쳐 프랑코를 지원하고, 스탈린은 공산주의자들만을 주로 지원하여 공화파 내분을 간접적으로 조장한 상태에서 시민 세력이 열정으로 무장하면 그 결과는? 이러한 충돌의 장면들을 당시 여러 방면의 유명인들이 남기고 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쎙떽쥐베리가 그러하였고, 프랑스 여성 철학자 시몬 베유는 참전하여 군대 식당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는다. 피카소는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게르니카를 그려 파리 만국박람회에 스페인관 입구에 붙여 놓았으며, 카파는 그 유명한 사진 '총 맞은 직후의 쓰러지는 순간의 국제여단 병사'를 찍어낸다.
그래서 이 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이 책의 다음 구절에서 발견된다. (447)"전쟁의 첫번째 희생자는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원천인 각 개인의 양심과 정직함이었다." 문제는 이른바 시민 민주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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