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실존, 역사 그리고 철학</title>
		<link>http://philstory.net/</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13 Aug 2010 02:28:55 +0900</pubDate>
		<generator>Textcube 1.7.8 : Con moto</generator>
		<image>
		<title>실존, 역사 그리고 철학</title>
		<url>http://philstory.net/attach/1/1019894856.gif</url>
		<link>http://philstory.net/</link>
		<width>82</width>
		<height>103</height>
		<description></description>
		</image>
		<item>
			<title>지방선거 끝난지 두달</title>
			<link>http://philstory.net/45</link>
			<description>그 선거는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내려져 있다. 2008년 집권한 그들에 대한 비판이고 투표 저항이었다. 그리고 두 달 넘게 지났다.&lt;BR&gt;&lt;BR&gt;여당의 대표는 선거 다음날 오전 자리를 던지고, 그 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내세웠다. 총리는 그날로 사실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는데, 최근에야 &#039;소탈하게&#039; 소나타 타고 정부청사를 떠났다. 그를 보며 난 배운다. 소탈하고 열심히 일하고 다 좋은데,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도 질문하는 게 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가끔 서울대 가보면 지금도 그런 사람들 널렸다. 성실과 재치, 그리고 좁은 분야에서의 치밀함, 어디서나 신사이기에 더러운 논쟁에 말려들지 않는 고결함 - 그가 행정도시 논쟁에 매달렸지만 그는 행정도시가 처음 추진된 이유인 수도권 집중 현상을 언급하기 보단 재벌들에게 혜택을 주어 그 행정도시의 필요성을 둘러싼 &#039;더러운&#039; 논쟁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그는 그래서 문제의 본질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다 - 까지 갖춘 이들이 거기에 많다. 그도 그런 이들의 대표 인물이었다.&lt;BR&gt;&lt;BR&gt;선거 한참 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개각으로 보이는 개각을 청와대는 했다. 그것도 어느 일요일 오후에 했다. 처음 들어서는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 간다는 거였다. 우연히 텔레비젼 뉴스를 보며 그때 난 한 명의 철학자 이름이 떠올랐다. 가다머, 요새 내가 번역하는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는 여기서도 떠오른다. 각자는 자신이 자신인 이유나 모습이 있나 보다. 저런 개각을 대하며 2년여 남은 기간 동안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길 난 정말로 원한다. 4대강도, 남북관계도, 민주주의도, 손볼 놈들 손도 보고, 한미공조도, 국제중학교 및 자사교도 추진하고 원하는 걸 추진하려 노력하여야 한다. 이런 게 자신의 모습이다. 가을 되면 오래 준비한 사립학교법도 재개정하고 말이다. 자신의 정치적 과제를 하려 노력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번 선거에서 평가 받는게 이른바 오늘날의 사회의 근간이다. 난 정말로 원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 절치부심하며 얻은 지금의 기회에 가급적 많은 일을 그들의 캐릭터에 맞게 이루길 말이다.&lt;BR&gt;&lt;BR&gt;선거 뒤 여당의 대표도 바뀌고, 총리도 바뀌고, 하여튼 개각도 이루어지고, 민주사회에서 선거만큼 중요한 건 없나 보다. 그런데 그 선거는 원래부터 쟁점이 두 가지였다. 지금 권력에 대한 저항은 분명한데, 저항이 모일 저수지가 영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거 뒤 지금 민주당은 권력 투쟁 중이다. 권력 투쟁은 이것이 말로, 논리로, 역사의 추세로, 머릿수로 이루어지면 아주 좋은 것일 것이다. 권력 투쟁 중인 민주당의 10월 초 전당대회 결과가 너무 역사의 분기점을 만들 것같아 난 사실 지금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며, 선의보단 반발과 반대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많은 이의 직관이 그때 이후로 실현될 것같아 기대되어 글을 쓴다. 정동영과 손학규 중의 하나가 꼭 되길 원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누가 되도 역사에 실은 대박인데, 한나라당 3등이 되는게 일단은 더 대박이겠지만 화끈하게 정동영이 동원한 선거인단이 야당을 움켜쥐고 전라도 자민련으로 전락하는게 역사에 더 분명한 메시지를 찍을 수 있다고 본다. 그날의 빅매치, 그날 이후의 그들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얼마전 물러난 정세균은 실은 민주당의 본질적 결함을 가리는 정치인이다. 그는 말이 되는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민주당의 수명을 정도 이상 연장시키고 있었다. 6월 초의 선거가 몰고올 진짜 변화는 여당이 아니라 10월의 야당 쪽에서다. 지금의 그 모습으로도 &#039;찍을 곳없어 찍어댈 수밖에 없었던&#039; 지지를 받은 그들은 뒷편에 숨어있지 말고 더욱 힘을 내서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어야 한다. 정동영과 손학규, 대박이다.</description>
			<category>feel it...</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5</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5#entry45comment</comments>
			<pubDate>Fri, 13 Aug 2010 02:25: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스페인 내전</title>
			<link>http://philstory.net/44</link>
			<description>전부터 스페인이 궁금했다. 드디어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하지만 그 나라는 여전히 오래 전 과거를 캐먹고 있는 나라로 보이고, 지금은 별로 멋진 나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 이탈리아도 포함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지난 1930년대 전후의 스페인과 유럽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amp;lt;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amp;gt;, 앤터니 비버 / 김원중 역&lt;BR&gt;&lt;BR&gt;때는 1920년대. 1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유럽세계에 남아있던 마지막 세 개의 큰 왕조가 몰락한다. 합스부르크 왕조, 독일 황제, 그리고 이보다 먼저 러시아 왕조가 무너진다. 왕조의 몰락은 이전 시대에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졌지만 이때의 왕조 몰락은 좀 황당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지 않고 말 그대로 공화국으로의 이행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시대 조류에서 스페인은 여전히 왕정을 고집한다. 이에는 귀족, 카톨릭, 자본가 및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규군이 가세한다. (49)&quot;당시 정치가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사회가 &#039;과두적 자유주의에서 대중 민주주의로&#039; 이행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알려 하지도 않았다.&quot; 반면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은 공화정을 요구한다. 이러한 갈등 구조에서 1930년대의 몇 차례 선거는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한다.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자신의 갈 길을 간다. 마침내 1936년의 선거에서 공화정 요구파가 승리하고 당시 왕이 망명하자 반대파는 군사 반란을 감행한다. 그리고는 스페인 전역에서 이후 3년 동안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lt;BR&gt;&lt;BR&gt;내전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세계의 갈등과 세상의 당시 현재가 그대로 반영된다. 카톨릭과 자본가는 왕정을 지지하는 프랑코 중심의 군대에 가세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는 스탈린 공산주의의 확산을 걱정하며 불간섭을 선포한다. (247)&quot;유화정책이 네빌 체임벌린의 발명품은 아니었다. 유화정책의 뿌리는 볼셰비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926년의 총파업과 경기 침체는 영국 보수 정치가들에게 혁명의 가능성을 매우 현실적인 걱정거리로 만들어놓았다. 그 결과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분쇄한 독일과 이탈리아 체제에 호오(好惡)가 뒤섞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quot; 어정쩡한 서방국가, 불간섭을 선포한 서방국가를 뒤로 하고 대표적으로 미국 대기업은 프랑코를 지원한다. (256)&quot;미국은 전쟁 기간 동안 프랑코에게 350만 톤의 석유를 외상으로 수출했는데, 이는 공화 정부가 수입한 석유량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양이었다. 텍사스정유회사(텍사코) 회장은 열렬한 파시즘 찬양자였다.&quot; &quot;포드, 스투드베이커, 제너럴모터스가 1만 2천 대의 군용 트럭을 국민군에 제공했는데, 이는 추축국들이 제공한 것의 세 배 가까운 규모였다. 화학공업계의 거인 듀퐁은 4만 발의 폭탄을 국민군에 제공했는데, 중립조약의 규정 위반을 피해 독일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quot; 그런데 당시 미국 시민들의 70% 가량은 공화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미국 의회의 지원은 미국 내 카톨릭 세력의 집요한 로비로 이루어지지 못한다.&lt;BR&gt;&lt;BR&gt;공화파가 기댈 언덕은 그래서 당시 수도 금고에 보관중이던 막대한 금과 스탈린이었다. 금을 주고 여러 곳에서 무기를 사나 무기 체제가 서로 달라 무기의 효율성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446)&quot;서유럽 정부들의 무감각하고 단기적인 반응과, 히틀러와 무솔리니 앞에서 그들이 보여준 무기력한 태도가 파시즘에 대한 저항을 코민테른이 독점하게 만들었다.&quot; 스탈린은 공화정부에서 금을 받고는 구형 무기를 섞어 보낸다. 문제는 그 배분이었다. 스탈린은 공화 정부 내의 공산주의자들의 집권을 위해서 무기를 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배분하여 공화파 내의 갈등을 키운다. 실제로 파시스트들과의 전쟁이 한창인 때 공화 지역 내에서 몇 차례 전투 - &#039;내전 중의 내전&#039; - 도 벌어져 자체의 힘을 소진시킨다.&lt;BR&gt;&lt;BR&gt;이른바 당시 민주국가들의 어정쩡한 모습, 대기업의 프랑코 지원, 스탈린의 공산주의자 편중 지원이 공화 정부를 어렵게 만들고 있을 때, 실로 전세계에서 국제여단이 결성되어 공화파를 지원하러 참전한다. 이로써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카톨릭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세력에 맞서 싸우는 세력은 말그대로 공화정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셈이다. 파시스트 세력과 이른바 시민 세력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이 싸움의 결과는? 당시 민주 국가들은 빠지고 당시 파시스트 국가들은 한데 뭉쳐 프랑코를 지원하고, 스탈린은 공산주의자들만을 주로 지원하여 공화파 내분을 간접적으로 조장한 상태에서 시민 세력이 열정으로 무장하면 그 결과는? 이러한 충돌의 장면들을 당시 여러 방면의 유명인들이 남기고 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쎙떽쥐베리가 그러하였고, 프랑스 여성 철학자 시몬 베유는 참전하여 군대 식당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는다. 피카소는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게르니카를 그려 파리 만국박람회에 스페인관 입구에 붙여 놓았으며, 카파는 그 유명한 사진 &#039;총 맞은 직후의 쓰러지는 순간의 국제여단 병사&#039;를 찍어낸다.&lt;BR&gt;&lt;BR&gt;그래서 이 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이 책의 다음 구절에서 발견된다. (447)&quot;전쟁의 첫번째 희생자는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원천인 각 개인의 양심과 정직함이었다.&quot; 문제는 이른바 시민 민주주의였다.</description>
			<category>서평</category>
			<category>스페인 내전</category>
			<category>시민 민주주의</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4</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4#entry44comment</comments>
			<pubDate>Wed, 04 Aug 2010 01:43: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가다머</title>
			<link>http://philstory.net/43</link>
			<description>요새 &amp;lt;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amp;gt;를 번역하고 있다. 재밌기는 한데 너무 어렵고 또 번역하긴 더 어렵다. 지난 밤에 주제인 나와 너에 대한 핵심 구절을 고심 끝에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새벽에 잠 들었는데 그 부분이 지금까지 생각나서 여기에 올리고 싶다..&lt;BR&gt;&lt;BR&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1pt&quot;&gt;&quot;말하는 이가 나인 경우에서처럼 불쑥 그리고 애매하게 이 총서의 거의 모든 시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러한 숙고에 담겨 있지 않는가? 너는 말이 건네지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는 나와 너의 일반적인 의미적 기능이어서, 이제 시어의 의미운동이 이러한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대하여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다면 대략 이런 뜻에서 일 것이다: 너는 나와 가까운 사람인가? 나의 이웃인가? 아니면 모두로부터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존재, 신일까? 이는 정해질 수 없다. 너가 누구인가가 정해질 수 없는 이유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걸음은 겨누기는 하나, 누군가가 대답하면서 말을 받지 않는 한 대상을 갖지는 못한다. 기독교의 사랑의 계명에서도, 가장 가까운 존재가 얼마나 떨어져서 신인지 또는 신이 얼마나 떨어져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지가 정해져있지 않다. 너란, 내가 특정한 나인만큼 특정한 다른 나이며 그리고 내가 특정한 나인만큼은 아니게 특정한 다른 나이다.&quot;&lt;BR&gt;&lt;BR&gt;저 마지막 문장은 독일어로 이렇다: &quot;Das Du ist so sehr und so wenig ein bestimmtes anderes Ich, wie das Ich ein bestimmtes Ich ist.&quot;&lt;BR&gt;이에 대한 영어판 번역: &quot;The You is only so much and so little I as the I I is.&quot;&lt;BR&gt;&lt;BR&gt;영어판은 이 부분은 좀 아니다. 그런데 나도 우리말로 옮기기에 많은 곳에서 한계를 느낀다. 책 어디선가 이런 구절을 보았다. &quot;중요한 순간의 번역은 실은 원본 없이 이루어진다.&quo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해석학</category>
			<category>가다머</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3</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3#entry43comment</comments>
			<pubDate>Fri, 16 Jul 2010 00:22:39 +0900</pubDate>
		</item>
		<item>
			<title>프로네시스</title>
			<link>http://philstory.net/42</link>
			<description>오늘이 7월 6일이다. 소중한 시간인 방학을 대학 선생으로 맞이할 때마다, 방학의 끝에서 반성하곤 하던 내가 잘 생각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039;잘&#039; 지낼 수 있기를 또 기대해본다.&lt;BR&gt;&lt;BR&gt;가다머의 책 &amp;lt;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amp;gt;를 번역하고 있다. 워낙 어렵다. &amp;lt;진리와 방법&amp;gt;이 왜 아직도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지 못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그건 나왔어야 하는데. 실은 그것을 번역하고 싶었는데. 이 희망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기회가 올 수 있으려나.. 하여튼 그런데 번역하고 있는 저 책도 정말로 만만치 않은 놈이다. 제목부터 질린다. 최대한 잘 읽히는 번역본으로 출간하고, 아울러 가다머 해설도 붙여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lt;BR&gt;&lt;BR&gt;그리고 또 하나를 방학 때 진행하고 있다. 바로 제목에 있는 프로네시스를 주제로 하는 논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련 문헌 수십권과 여러 경로로 대할 논문, 외서, 한국자료 등을 보고,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유래하는 프로네시스 관련 내용을 정리하고 그 전개 및 논쟁사를 이어서 분석할 예정이다. 이것도 실은 독일 유학 시절부터 언젠가 정리하려던 나만의 장기 과제였는데, 한국에서 여태 그 누구도 정리하고 있지 않아서 내가 해보기로 했다. 이것도 잘 되면 재미있을텐데.. 8월엔 이의 초고를 작성하고 싶다.</description>
			<category>해석학</category>
			<category>가다머</category>
			<category>프로네시스</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2</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2#entry42comment</comments>
			<pubDate>Wed, 07 Jul 2010 00:53: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월드컵, 정대세의 눈물</title>
			<link>http://philstory.net/41</link>
			<description>경기가 새벽 3시 30분에 시작되어 보질 못했다. 일어나니 2대 1 패배라는 결과를 알게 되었고, 오후가 되어 정대세의 눈물을 알게 되었다.&lt;BR&gt;&lt;BR&gt;한국 국적이면서 북한 선수로 뛰는 정대세. 한국 교포 3세인 그가 북한 대표로 뛰기 위해 그는 FIFA에 자필 청원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북의 현실과 자신의 독특한 가정사 그리고 자신이 북에서 뛰고 싶은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그는 남아공에 가고, 그 자리에서 국가 연주 때 그리고 경기 종료 뒤 눈물을 쏟는다.&lt;BR&gt;&lt;BR&gt;이러한 뉴스들을 검색하려 네이버를 이용하니 검색 최상단에 &#039;그의 눈물은 빨갱이 선전용&#039;이라는 누군가의 글이 뜬다.&lt;BR&gt;&lt;BR&gt;그러면서 또 하나의 글에서 그의 눈물은 2008년 남북대결에 이은 두번째 였다고 말하고 있다.&lt;BR&gt;&lt;BR&gt;천암함이 생각나고, 한 개인의 길이 느겨진다. 그러고 보니 분단은 65년째이다. 참 심지도 굳은 이들이 한반도에서 살고 있다..&amp;nbsp;</description>
			<category>feel it...</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1</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1#entry41comment</comments>
			<pubDate>Wed, 16 Jun 2010 23:07: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0년 여름</title>
			<link>http://philstory.net/40</link>
			<description>장충체육관 건너편에 있는 철학아카데미에서 오는 6월 28일부터 강의하기로 했다. 그것도 오래 생각하고 요새 몰입하고 있는 주제인 &#039;역사와 함께 하는 철학&#039;으로 말이다. 아직 준비는 충분치 않은데 남은 2주여 동안 준비해서 나도 생각을 검증받고 듣는 이들도 무언가를 느끼는 기회가 되면 좋을텐데.. 요샌 학기말이라서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어 문제다. 글쎄 책은 읽었는데 워낙 바쁘게 읽어서 삵히는 시간이 없어서 좀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lt;BR&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개요와 시간표 그리고 참고문헌이 다음과 같다.&lt;BR&gt;&amp;lt;개요&amp;gt;&amp;nbsp; &lt;BR&gt;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비판이 있다. 바로 인문학자들의 몰역사적 태도를 탓하는 비판이다. 철학과 사상 연구에 있어 그 철학과 사상이 자란 터전을 따지며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숱하게 있어왔다. 최근에 한 학술지에 기고된 글인 ‘한국철학계의 동향과 특성’에서도 이는 또다시 발견된다. “현대의 한국철학계가 철학사상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하는 것은 당연히 시정되어야 할 현안점 중의 하나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예를 들어 18세기말의 칸트철학이, 카톨릭에 프로테스트하여 어느 역사학자의 표현대로 ‘기진맥진한 상태의 관용’으로나마 자리잡아 가는 신교운동, 자연과학이 신학의 영향권에서 점차 벗어나는 당시의 흐름, 그리고 프랑스대혁명 등과 분리되어 고찰되는 것이 철학적 탐구 자세일까? 나아가 저 시대의 이야기들은 단지 칸트철학 형성의 배경 정도에 머무는 것일까? 본 강좌는 저러한 역사 이야기들을 다루어 이를 통해 칸트철학의 선험성 개념 등을 조명하며, 이보다 먼저 고대 아테네 역사와 철학적 논쟁 및 이후의 영향사를 다룬다. 그리고 19세기말과 20세기초 서양의 모습을 살피며 역사와 철학이 함께 가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그러면서 강좌 전체적으로는 역사와 함께 하는 철학, 아니 정확히는 ‘역사와 함께 해온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lt;시간표&amp;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1강: 철학은 역사 초월적 학문일까? 고대 아테네 시기 및 17.18세기 그리고 현대철학을 생각하며&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2강: 고대 아테네의 역사, 그리고 아르케의 문제(I)&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3강: 고대 아테네의 역사, 그리고 아르케의 문제(II)&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4강: 중세말에서 17.18세기로 가는 역사의 여러 장면들, 자아의 발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5강: 프랑스대혁명의 진행 과정, 그리고 당대의 사상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6강: 칸트 선험성 개념에 대한 역사에 토대한 해석&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7강: 주관으로 향하는 19세기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8강: 인간 역사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역사를 관찰하는 지성과 역사 안에 실존하는 지성&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amp;lt;참고문헌&amp;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핀란드 역으로』, 에드먼드 윌슨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07.&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존스턴 지음, 변학수 외 옮김, 글항아리, 2008.&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세기말 비엔나』,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구운몽, 2006.&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장 마생 지음, 양희영 옮김, 교양인, 2005.&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생각의 역사 I,II』, 왓슨 지음, 남경태 외 옮김, 들녘, 2009.&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039;굴림&#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머리가 따끈따끈한 여름이 되길...&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와 철학</category>
			<category>철학아카데미</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40</guid>
			<comments>http://philstory.net/40#entry40comment</comments>
			<pubDate>Tue, 15 Jun 2010 01:57: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역사는 이쪽이다</title>
			<link>http://philstory.net/39</link>
			<description>이겼다. 그러나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승리다. 서울과 경기의 미세한 패배가 역사를 그런데 이끌 것이다.&lt;BR&gt;&lt;BR&gt;30,40대가 조금 더 투표하여 이겼다. 2년전 총선에서 민주당, 정동영을 대안으로 보지 않은 세력이 당시에는 기권하였으나 이번엔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lt;BR&gt;&lt;BR&gt;이 30,40대는 이 사회의 전면에 아직 나서지 못하고는 있으나 곳곳에서 그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열받아 아주 조금 움직인 결과가 이거다. 이들이 정말 움직이도록 이 정권은 앞으로 내내 도와줄 것이다.&lt;BR&gt;&lt;BR&gt;여당은 이런 이야기를 쏟아 낸다. &quot;4년전 노무현 정권은 더 참패&quot;, &quot;이대로 간다&quot;, &quot;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quot;, &quot;(오세훈) 강남시장이란 말 억울&quot;, &quot;(청와대의 이른바 &#039;이핵심&#039;)뚜벅뚜벅 가겠다&quot;. 이렇게 그들은 역사에 기여한다. 역사를 더 열받게 하면서 말이다. 열받으며 2010년 7월 휴가철의 재보선과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역사는 진입하며 그 에너지를 분출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그 자체적 의지로 진전되기 보다는 반대와 저항으로 진전한다. 단거리 달기기에서도 조금 처진 2등이 결승선을 먼저 밟는다.&lt;BR&gt;&lt;BR&gt;이번에 가장 큰 승리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여론조사의 그 수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로 자신들이 대세라는 걸 확인한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세라는 걸 6월 2일에 만들어냈다.&lt;BR&gt;&amp;nbsp;</description>
			<category>feel it...</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39</guid>
			<comments>http://philstory.net/39#entry39comment</comments>
			<pubDate>Mon, 07 Jun 2010 00:46: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수치로 예상하는 그 날, 6.2</title>
			<link>http://philstory.net/38</link>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Gulim&#039;, Sans-serif&quot;&gt;2009년 두 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패배를 수치로 예상한 여론조사 결과는 없었다. 수원 장안의 선거도 내내 한나라당 후보가 12-13%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난무하는 가운데 치러져 결과를 보니 야당의 7.7% 승리였다. 시흥시장 선거도 여당이 6% 이상 앞선다는 여론조사 속에서 치러져 야당이 6% 승리했다. 다른 재보궐선거도 여론조사보다 적게는 12%, 많게는 20% 가까이 야당이 더 얻었다.&lt;BR&gt;&lt;BR&gt;실은 2002년 여름과 가을 내내 노무현도 이회창 대세론에 허덕였다. 당시 나도 될 수 있으려나 생각했었다.&lt;BR&gt;&lt;BR&gt;부재자 투표자 수가 2004년 탄핵 반대 열풍에서 치러진 총선보다 많아졌다. 93만명이다. 4년전 총선보다는 20만명 정도 많아졌다.&lt;BR&gt;&lt;BR&gt;선관위의 조사로 유권자의 59.5%가 반드시 투표한다고 밝혀 4년전 지방선거보다 7.8% 증가했다.&lt;BR&gt;&lt;BR&gt;&amp;lt;아고라에서 광화문까지&amp;gt;에서 나는 이를 일종의 자가발전이라 불렀었다:&lt;/FON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quo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역사는 움직인다. 증시 종합지수도 움직인다. 종합지수는 80년대 말 1000포인트를 넘고 밀리고 또 넘기를 되풀이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향 중이다. 증시 차트가 움직인다고 하여 아무런 방향 없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움직임도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다. 70년대 말 당시 야당은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보다 1.1% 정도 더 득표한다. 물론 의석의 3분의 1을 점하는 유정회 때문에 여당보다 더 득표하고도 의석의 3분의 1도 점하지 못하는 데 머문다. 우리가 독재를 하나의 개념이나 역사로만 이해하면 우리도 역사를 배우고 관찰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독재를 하나의 수치로 구체적으로 나의 삶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절반 이상의 민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3분의 2가 넘는 주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 70년대 독재의 구체적 모습이고 실제다. 1.1% 더 득표한 쪽이 권력을 쥐는 것이 역사의 정상적 방향인데 이를 마음대로 하기에 독재인 것이다. 이 당연한 승리가 현실화되지 못하는 상황은 5공화국의 탄압과 90년대 3당 합당으로 인한 벌거벗은 지역주의로 인해 계속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70년대 말 숫자로만 이루어진 정권교체는 정치적 탄압과 극단적 지역주의에 의해 20년을 지체하고도 부족하여 정권교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력과의 동침에 의해서야 비로소 실제로 성취된다. JP의 표를 보태고서야 역사는 97년에 전환점에 이른다. DJP연합이 깨진 이유도 선거제도에 있었다. 어떤 선거제도에서 자신이 정치인으로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독일식 선거제도의 도입을 거부하여 정치적 야합이 깨지고 실시된 2000년 총선은 역사가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출구조사는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대개 앞서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57% 정도의 투표율로 사상 최저의 총선 투표율을 보인 그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선거 다음날 낮까지 개표가 계속된 20개에 달하는 선거구였다. 이들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눈터지는 계가가 그 다음날 정오경까지 지속되었으며, 여기서 한나라당이 대부분 승리한다. 전체 선거구 중 15개에서 천표 차 이내로 승부가 갈렸다. 특히 이천 표 이내에서 당락이 결정된 수도권 선거구는 14곳이었는데, 이중 12곳을 한나라당이 2곳을 민주당이 가져간다. 이 수도권 격전에서 133석 대 115석(총 273석)이라는 최종 성적은 사실상 작성된다. 역사의 흐름 전환에는 아직 2%가 부족하였던 것이다. 그건 투표율이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아슬아슬하게 결정된 십여 석 정도가 의회 권력을 좌우할 만큼 역사는 분기점을 지나고 있었다. 5공의 정치적 탄압을 극복한 다음에도 처절한 지역주의 앞에 분열되어 승리를 늦추고 있었던 정치 세력은, 97년 승리에 기여한 JP 도움 없이 3년 뒤에 스스로의 힘에 의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했다. 바로 투표율이었다. 최소한 대선 때와 같은 수준의 투표율이 필요하였다.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의 미세한 패배에, 바로 이 순간에 하나의 정치 세력은 서있던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이러한데도 기존 세력의 대세론은 다시금 등장하여 널리 확산된다. 이는 이전의 주도 세력이 수십 년간 이 사회를 장악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회 곳곳의 정점을 지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 주로 기인한다. 이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이제까지 대세를 형성하던 세력이 반대 세력의 등장으로 곧바로 물러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시민의 선택을 앞에 두고도 이른바 새로운 대세를 형성하고자 한다. 누구의 대세론 따위가 어느새 등장하여 사회 여론을 이끌고 간다. 여론이 실제로 결집하여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지는 많은 경우 불투명하다. 의원들이 모이고 명망가들이 그곳으로 집결하여 각종 외곽단체를 결성하고, 언론이 이를 다루며 자연스레 하나의 트렌드는 부각되고, 이렇게 형성된 트렌드는 대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하나의 실체성을 획득한다.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대세론은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되고, 이제 실체도 확보한 대세론은 거꾸로 사회 전반에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회의 흐름도 바꾼다. 이는 그런데 자가발전된 대세론인 셈이다.&quot;&lt;BR&gt;&lt;BR&gt;&lt;FONT face=&quot;&#039;Gulim&#039;, Sans-serif&quot;&gt;&lt;FONT face=&quot;&#039;GulimChe&#039;, Sans-serif&quot;&gt;난 이 글을 3년여전에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들은 여론조사를 무기로 대세론을 전파하여 사회를 휘어잡고자 한다. 그 자가발전된 대세론이 이기는지 아니면 역사의 흐름, 추세가 이기는지 이틀 뒤 보게 될 것이다.&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feel it...</category>
			<category>아고라에서 광화문까지</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38</guid>
			<comments>http://philstory.net/38#entry38comment</comments>
			<pubDate>Tue, 01 Jun 2010 00:03:5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정치인의 눈물</title>
			<link>http://philstory.net/37</link>
			<description>멀리는 1992년 김대중의 쓸쓸하고 적막한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는 &#039;공부하러&#039; 외국을 떠돌았다. 공부가 주업이 아닌데 말이다.&lt;BR&gt;&lt;BR&gt;그리고 떠오르는 눈물은 2002년 이회창의 12월 패배 뒤 텔레비젼 화면의 그 큰 얼굴에 여과 없이 흐르던 눈물이었다. 60 넘은 한 남자의 눈물, 정치는 엄중하다. 정치는 여론조사와 뉴스의 대상을 넘어서는 그곳에 있다. 사람은, 정치는 장난이 아니고 기권의 대상이 아니다. 그 자신과 자신이 보는 역사의 이야기이고 실존이 거기엔 있다. 눈물 그것으로만 그에게도 그 때가 소화될 수 있을 뿐이었을 것이다.&lt;BR&gt;&lt;BR&gt;2009년 5월, 눈물 보다 더한 노무현의 자살이 이어진다. 자살로 말하는 삶, 그 앞에 기권은 없다.&lt;BR&gt;&lt;BR&gt;그리고 어제 늦게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의 눈물로 범벅 된 기자회견 동영상 16분을 보며 나도 할 말이 없었고 하마터면 울뻔 했다. 나도 그녀와 함께 한국사회의 현재를 온몸으로 그끼고 있었다. 그 강인한 인상의 진보주의자의 눈물, 그녀는 이 시대에 그걸로 자신의 발언을, 실존적 뜻을 담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lt;BR&gt;&amp;nbsp;&lt;BR&gt;그리곤 다른 쪽 뉴스엔 &#039;전쟁&#039;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대통령의 발언이 떴다. 더 갈 데가 없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소리를 오늘밤 난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발전에는 정면의 대결도 있어야 한다..</description>
			<category>전체</category>
			<category>노무현</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37</guid>
			<comments>http://philstory.net/37#entry37comment</comments>
			<pubDate>Mon, 31 May 2010 01:17: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총체적 시각</title>
			<link>http://philstory.net/36</link>
			<description>온갖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북퐁과 노풍, 전쟁과 평화, 지지율 등 재미있기는 하다. 씁쓸할 정도로. 그런데 한번 전반적으로 보고 싶다.&lt;BR&gt;&lt;BR&gt;이 정부 들어와 주류 기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 세력은 대부분 실은 데모 중이다. 신부들은 명동성당에서, 불교는 전국 각지에서 외치고 있다.&lt;BR&gt;&lt;BR&gt;온갖 시민단체는 발언하고 연대하려 움직인다.&lt;BR&gt;&amp;nbsp;&lt;BR&gt;그리고 노무현은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다 그 흐름에 죽었다. 그를 보며 희망을 보던 이들은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 2년여전 선거에서 찍을 후보가 사실상 없었던 상태는 아닌 현재다.&lt;BR&gt;&lt;BR&gt;그리고 전라도는 여전히 경상도에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으로 남아있다. 일부 농간 부리는 역겨운 지역 토호들이 있지만 그들은 최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들도 위기를 느끼고 있는 거다.&lt;BR&gt;&lt;BR&gt;젊은이들은 최근 몇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언가를 발언할 태세이다. 최소한 그들의 입에서 정치가 주제로 등장하는 장면을 꽤 많이 대하고 있다.&lt;BR&gt;&lt;BR&gt;그리고 지난 2년 정도 사이에 있었던 재보궐선거는 그들의 참패로 끝났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일부 지역의 투표율은 총선 때의 투표율에 육박하거나 넘어섰다는 것이다.&lt;BR&gt;&lt;BR&gt;마지막으로 한반도 역사의 추세다. 망국과 식민시절, 전쟁, 가난과 독재,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지나 도달한 현재, 그 추세는 어디로 일까? 천안함이 이 6월 2일을 결정한다면 난 다음 날을 기다리겠지만, 지금의 한반도 민중은 실은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저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발언을 수 차례 거리에서 그리고 투표로 밝혔왔다. 87년 6.29부터 97년과 2002년 그리고 2004년에 발언했었다. 그러한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진전되지 않는 역사를 보며 지난 6년여를 허탈 속에 이들은 무려 6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발언대에 또다시 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실은 같은 성격의 정당에 투표한다. 난 나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안은 채 그 날을 맞이할 것이다.&lt;BR&gt;&lt;BR&gt;대부분의 종교가 돌아서고, 시민단체는 결집하고, 노무현은 자살하여 역사에 그 선명한 메시지를 남기고, 전라도는 여전히 전라도이고, 투표율은 재보선에서와 마찬가지 상승현상을 보일 것이고, 천안함은 한국인들에게 다시금 6.25, 분단, 그리고 현재를 한꺼번에 지켜보게 만들고 있다. 오늘이 간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온다.</description>
			<category>feel it...</category>
			<author>(반성택)</author>
			<guid>http://philstory.net/36</guid>
			<comments>http://philstory.net/36#entry36comment</comments>
			<pubDate>Fri, 28 May 2010 01:22:50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