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타임스

Posted 2009/08/10 11:48, Filed under: 서평

'변신한 저자가 변신을 정당화하다.'

폴 존슨이 쓴 <모던 타임스>를 보면, 많이 알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쿠바, 아르헨티나의 역사, 뭇솔리니의 행적, 1930년대의 프랑스 등 개별적으로 알기엔 너무 힘들었을 내용까지 두 권의 책으로 모두 알아본다는 장점은 실로 대단하다. 쿠바에서의 재앙 뒤에 미국은 베트남에 보다 굳건한 자세로 뛰어든다는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20세기의 세계를 함께 생각해보기, 1차대전 참전 병사들의 정신적 공황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연관성 등 이로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들뜨게 만든다.

또한 우리의 이야기도 다루어지며 독서의 흥미는 배가된다. "냉전이 폴란드에서 시작되었다면, 냉전이 완성된 곳은 한국이다."(160) 우리의 생존을 좌우한 전쟁의 주요 요인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오판이었다고 '객관적으로' 기술된다. 미국 국무장관의 오판에 한반도 민중의 생사가 결정되었다는 역사인식은 처참하다.  "남한에는 500명의 미국 군사 요원만 남아 있었다. 애치슨의 요점은 중국의 공산화가 완전한 상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 소련이 곧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152) 요점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정부의 등장 뒤 중국과 소련이 다투리라고 미국 정부는 판단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중국과 소련이 함께 김일성에게 한반도 남쪽 침략을 허락하자 미국은 참전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전형적인 20세기의 비극으로 도덕적 정당성이나 국민의 지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다."(157)

실제로 나도 이 책을 사놓고는 그 엄청난 분량에 질리면서도 목차 등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읽게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런데 이 책은 아인슈타인에서 시작하여, 20세기 인간들의 삶의 토대 위기 문제를 건드리며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이내 좀 이상하다.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등을 보며 무언가를 느껴갈 시점에 레닌, 스탈린, 히틀러 등에 대한 무시무시한 평가가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저자뿐아니라 여러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삶, 사생활, 이념 모두를 난도질하는 비난을 대하는 것이 이 책을 잡은 목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며 요새 유행하는 말로 '낚인 것같다'는 꿀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독서가 진행되며 말하자면 무얼 배우고 느껴감에서 무슨 주장을 따라가며 책 장을 넘기고 있음으로 상당 부분 돌변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본론은 이렇다. 메카시즘도 미국의 문제라기 보다는 "메카시즘은 스탈린이 미국에게 선사한 마지막 선물"로 기술되고, "0.6%라는 아슬아슬한 승리"로 대통령에 오른 닉슨은 "존슨과 케네디 시대의 무정부적 유산을 일소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마녀 사냥"에 걸려 마침내 "언론쿠테타"로 사임한다고 폴 존슨은 쓰고 있다. 과연 이런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알아보긴 하겠는데, 그런데 난 저자가 아주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 때문에 낚시질이 떠오른 것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며 앞으로의 독서가 정말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점차 20세기의 그 많은 역사들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해석을 자꾸 대하며 점차 지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지성은 분명 많이 아는 것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지성은 많이 아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해석과 종합도 요구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가 한계인 것같다. 2권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으며 점차 용두사미란 말을 떠올릴 때쯤,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어느 일간신문 서평에 난 기사에서다. "1970년대 초까지 좌파 성향의 정치잡지 '뉴스테이츠맨'의 편집자로 일하다 영국노동당에 반대해 보수주의로 변신한 폴 존슨".  

저자의 이러한 족적을 대하며 우리 역사뿐아니라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많은 정치가와 사상가들이 보여준 <변신 또는 변절>이 떠오른다. 변신은 있을 수 있지만 변신을 감행한 이들은 보통 많이 극단화되는 게 정작 문제다. 자신이 보기에 자신의 변신, 변모, 변절은 정당하기에, 이전의 자신이 가던 길은 많은 경우 옳지 않은 길이 되어버리곤 하여서 일 것이다.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변신한 사람보다, 오히려 변신하지 않은 사람이 오래 간직하고 키워온 이야기를 그가 어느 지점에 서있든 들어보고 싶다.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숙성시킨 문제의식으로 써내려간 책이 등장하여 20세기 인간 세계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니체의 철학, 종교와 왕실이 쇠락한 뒤의 삶의 기반 문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 1인1표제에 기반한 20세기 후반 부터의 민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다루어주길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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